subject 손양원 관련 4대 쟁점과 연구소 활동
writer 가족회
date 24-06-25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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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의 소개는 지금 인터넷과 출판과 연구 도서와 학술 논문과 수많은 유튜브에 넘쳐 난다.
그러나 가족은 그 자료 거의 전부가 틀렸다며 개탄을 한다. 최근 연구소가 손양원 가족회를 위해 제공한 자료와 논점은 두 아들의 경우 77년, 부친의 경우 74년을 이어 온 논란을 일체 종결 시키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안 4가지만 우선 공개한다. 모두가 방문하고 모두가 동감을 하며, 그 동안 반대 입장을 견지한 통합 교단 중심의 학자들까지 전부 일체 말이 없다.

이 곳이 백영희 신앙만 주력하지만 손양원 주남선의 신앙은 이 노선의 외곽이 아니라 내부에 깊이 하나로 들어 왔다.
이 노선 연구의 확장 또는 일부로 보셨으면 한다.

 

 

  

       1. 두 형제의 순교 신앙은, 애양원이 만들었던가?

               (두 아들 초기묘비, 1949년)

SONDOING(EB) SODONGSIN(YB)

THE TOMB OF MARTYR

순교자

 

형 손동인

          제 손동신의 묘

 

(애양원 측 입장)

가정신앙

“내 자손에게는 무엇보다 신앙을 전장하겠다” 이것은 고 손군 형제의 조부이신 고 손종일 장로의 자손 교양의 수훈이었다. 아버지 손양원 목사는 왜정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교리를 위하여 남관(南冠) 육년 (1940-1945) 독실한 신앙으로서 승리하였고 어머니 정양순씨는 육년 박해에 어린자녀 오남매를 이끌고 공장고아원산촌벽지로 쫓기어 기한도 참고 등모도 달게 여기며 신앙을 지키었다.

 

교회신앙

돕는 자까지 형벌을 받던 때이나 애양원 교회는 손양원 목사의 신앙정신의 훈도(薰陶)를 받아 힘껏 돕고 정성껏 기도하며 위대한 순교자(殉敎者)를 길러내는 고난과 영예에 참예하였었다

 

본인신앙

이러한 신앙 안에서 자란난 고 손군 형제는 신사 불참배 일본 제국주의 교육제도에 반항함으로 퇴학되자 당시 형제는 같이 일터로 나가 몇 푼의 일삯으로 옥에 갇힌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와 아우들을 도우며 극도의 빈한과

 

싸우던 중 해방이 되어 각각 취학하였던 바, 동인은 스물 네 살 순천사범 육학년. 동신은 열아홉살 순천중학 사학년 재학 중 1948년 10월 21일 소위 “기독학생 운동의 두령”이라는 죄명으로 여순 소요(麗順騷擾)를 일으킨 그들과 함께 한 동창 학우에게 잡히어 무수히 타매를 당하며 형장으로 끌려가는 도중 형제는 같이 그들에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으라!” 고 온유하게 권하면서 형은 아우를 아우는 형을 살리려고 서로 죽음을 다투는 형제애의 지정(至情)도 헛되이 형제는 함께 껴안고 총에 맞아 순교하는 순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고 스데반의 뒤를 따랐었다. (요 11025 6)

 

1949년 9월 일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애양원 교회 엮음

김 수규 씀

전남광주 서석 공장 만듬

 

  (비교)

  • 핍박하고 쫓아내었던 애양원 교회가 순교자를 길러내었다?

  • 자랑스러워 하는 그들에게, 실제는 그런 뜻이 아니다.

 


 

         2. 손양원은 통합 교단만의 인물인가?

                       (손양원, 통합측 역사 유적 등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95회 총회(2010) 애양원교회와 손양원 목사 삼부자 묘를 한국기독교 사적 제6호로 지정하였다.

한국기독교사적 제6-1호(손양원목사삼부자묘) 지정식

행정지원 2011-04-20 (수) 14:57

일시 : 2011. 4. 28. 목 오후 2:00
장소 : 여수 애양원 동도 손양원 목사 묘역

여수 애양원의 현 성산교회 예배당은 제94회 총회에서 총회 한국기독교사적 제6호(애양원 예배당)로 지정되었습니다. 2010년 6월 손양원 목사님 순교 60주년을 맞아 지정식을 미리 거행하였고 제95회 총회 본 회의(2010. 9)에서 정식 인정되었습니다.

제94회 총회 역사위원회는 제95회 총회를 맞으며 손양원 목사와 그의 두 아들이 함께 묻힌 순교 묘역은 역사적으로 그 가치가 높으므로 손양원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애양원교회(현 성산교회)와 함께 사적으로 지정하는 것을 마땅하다고 판단하여 제95회 총회 본 회의에 제6-1호 손양원 목사 삼부자 묘의 사적 지정을 청원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총회 지정 한국기독교사적 제6-1호
손양원 목사 삼부자 묘

순교사 손양원 목사, 장남 동인, 차남 동신

1부 감사 예배
인 도 : 배용주 목사(여수노회, 손양원선교회 회장) 기 도 : 박승호 목사(여수노회 순교위원장) 성경봉독 : 김병찬 목사(여수노회, 손양원선교회 총무) 설 교 : 박남인 목사(여수노회장) 축 도 : 윤이남 목사(여수노회, 손양원선교회 전 회장) 인 사 : 이광일 목사(여수노회, 성산교회 담임)

2부 지정식
인 도 : 김상룡 목사(총회 역사위원회 서기) 경 과 보 고 : 김상룡 목사 기 도 : 박덕근 장로(총회 역사위원) 사 적 소 개 : 김상룡 목사 지 정 공 포 : 김원영 목사(총회 역사위원장) 등록증전달 : 김원영 목사 지정비제막 : 총회 대표, 노회 대표, 손양원선교회 대표, 교회대표

 

  • 손양원의 신앙은 통합이 아니다. 

 


 

         3. 손양원의 청동상, 괜찮은 것인가?

 

  • 기념은 커녕 손양원을 왜곡하지 말라

 


 

         4. 나환자의 상처를 빨았다는 것은 사실인가?

          손양원이 그런 신앙이었던 것인가?

 

          (여수 손양원 기념관, 직접 기록)

 

        (여수 손양원 기념관 내,  고름을 빠는 조형물)

 

  • 나환자의 고름 빤 것보다 손양원의 더 중요한 것은 외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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